(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국내 정신과 의사들이 불안 증상에 주로 처방하는 의약품 리보트릴(성분명:클로나제팜)의 사용제한을 두고 정신과의사회와 이 약을 판매하는 다국적제약사 로슈가 갈등을 빚고 있다.
18일 정신과의사회에 따르면 리보트릴은 원래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항전간제(간질 치료제)로 승인된 약물이지만 실제 국내에서는 불안장애 등의 정신질환에 주로 처방되고 있다.
이 약은 한 알당 가격이 30원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만 연간 10억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할 정도로 처방량이 많은 편이다.
문제는 약 20여년에 걸쳐 불안장애 증상에 처방돼온 이 약물이 이달부터 사실상 사용이 금지되면서 불거졌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3월부터 오남용약물 전산심사를 시작하면서 의약품이 허가받지 않은 용도로 처방하거나 오남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즉 리보트릴은 불안 치료제가 아니라 간질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만큼 전산심사 과정에서 아예 처방이 금지되는 셈이다.
의사회 이상민 정책위원은 "리보트릴은 정신과에서 아스피린 같은 약물"이라며 "지금은 이 약을 보험으로 처방하면 삭감이 되고 일반약으로 처방하면 부당진료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두고 의사회와 제약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의사회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제약사가 별도의 식약청 임상시험을 통해 불안장애에 대한 적응증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로슈 측은 "리보트릴을 불안장애에 처방하는 외국의 사례나 문헌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회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이상민 위원은 "한국로슈가 해외에서 불안증상 치료제와 간질 치료제로 쓰이는 리보트릴을 국내에 도입하면서 항전간제로만 허가를 받았다"면서 "식약청에서도 실용적 임상연구 제도를 통해 추가적인 임상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존의 절반 수준인 10억원으로 줄여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등록 비용을 건지지 못한다고 판단한 로슈가 이마저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신과의사회는 향후 한국로슈를 규탄하고 대국민 홍보전을 편다는 계획이다.
의사회 김동욱 보험이사는 "로슈는 불안장애 환자들의 증상을 악화시키고 3~4배 비싼 고가약 처방으로 내모는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면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신문광고 등을 통해 로슈의 부도덕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슈는 "리보트릴은 미국서 공황장애에 적응증이 추가된 것 말고는 전세계에서 간질 치료제로만 사용되고 있고 불안장애 치료 약물로 처방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의사회의 주장이 당혹스럽다"고 답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3/18 06: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