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차별을 넘어-①교육 사각지대의 이주아동


등록일 2011-03-21
정보제공처 연합뉴스




"한국어 못해 입학 거부당하고 낮은 학년 배정돼"

 

<※편집자주 =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명에 달하고 다문화 가정도 18만 가구를 헤아리는 등 한국 사회가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 물결 속에 다문화 사회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현실이 됐고, 우리 생활 속 곳곳에서 외국인들과의 어울림은 일상이 됐다. 취업, 결혼, 유학 등을 위해 한국에 온 이주민들은 이제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며,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피부색과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고 차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결혼이주 여성, 이주아동,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차별 실태와 원인, 이들의 고단한 현실 등을 진단하고,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21일부터 4일 동안 분야별로 나눠 매일 송고한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태국 출신 빗 톤세톤(18)군은 어머니가 있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길 꿈꿨다.

  

한국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빗군. 지난 2년간 10군데가 넘는 학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국 학교의 담장은 높았다.

  

경기도 화성시 집 주변 고등학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애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말고 무엇을 더하겠느냐. 학교를 보내봤자 소용없다"고 고개를 돌리며 입학 신청을 거부했다.

  

심지어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또래가 아닌 한참 동생뻘들과 함께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니라는 참담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빗군은 어머니가 2000년 한국인과 재혼한 후 태국 농카이 외가에서 성장하다 2009년 봄 한국으로 들어왔다.

  

당시 태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심했고, 아버지 이병환(45)씨는 빗군 입양을 준비하던 차에 아들의 안전을 걱정해 서둘러 입국시켰다.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고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 동생들도 잘 따르자 빗군은 한국에서의 새 삶에 희망을 품게 됐다. 한국 학교에 적응하려고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이주민지원센터를 다니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10대 청소년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는 "정 교육하고 싶으면 외국인 학교에 보내라고 하는데 일 년에 등록금만 600만원 넘는 곳에 어떻게 보내겠느냐"며 "한국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해줄 수는 없느냐"고 반문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아들의 가능성을 보고 받아줬으면 싶은데 단번에 거절하니 아들이 참 힘들어하고 우울해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부모가 입양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혼선을 겪고, 입양 관련 서류를 떼자면 바쁜 부모가 직접 태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입양조차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빗군은 태국에서 검정고시라도 보고 돌아오겠다면서 지난 7일 가족과 떨어져 태국으로 떠났다.

  

◇ 이주청소년 15% 입학거부 경험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 자녀와 달리 후진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의 자녀들은 한국 학교에 가지 않으면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부모의 인종, 피부색, 언어, 신분 등에 관계없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했고, 우리 사회도 이주아동의 교육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일선 학교들은 이들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인색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재혼 외국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데려온 외국 태생 자녀(이하 중도입국 자녀), 이주노동자 자녀, 난민 자녀 186명을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15.2%가 입학 거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자신의 한국어 능력 부족(61.4%), 부모의 한국어 능력 부족(50.9%), 비자문제(34.3%), 입학절차의 이해 부족(37.2%) 등이 공교육 진입의 장애요소였다.

  

또 부모들은 주로 다문화 지원단체에서 입학정보(42.7%), 입학서류준비(39.6%), 모국어통역(37.5%)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10%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국내 이주노동자 자녀와 중도입국 자녀는 현재 2만~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0년 4월 기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노동자 자녀는 2천40명, 중도입국자는 2천532명으로 전체의 약 10%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 대다수 청소년들이 경제 형편,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 학습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학교 밖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신혜영 활동가는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자녀나 한국말이 서툰 중도입국자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며 "보통 4~5번을 지원하고, 흔히 몇 학년을 낮춰서 진학하거나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 "이주아동 입학 보장하고 특별학급 확대해야"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부모를 따라 2007년 8월 입국해 4년째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루타(17.가명)군은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생활을 하는 게 즐겁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말을 못해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아침 수업 시작 전에 선생님과 따로 만화를 보며 한국말을 배운 뒤에는 실력이 부쩍 늘었다"며 "성적은 35명 중 25등 정도로 공부와 학교생활이 모두 즐겁다"고 말했다.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학교가 입학을 거부했고, 교사가 한국어를 못한다며 그를 내팽개쳤다면 루타군은 청소년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방황했을 게 분명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해도 자녀를 무조건 받아주라고 작년 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일선 학교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혹시 사고가 날까 봐" "학습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등의 이유로 입학 신청을 거부하고 있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소장은 "외국인 아동의 입학을 거부하는 행위는 관리감독을 통해 교과부가 조치해야 한다"며 "교육 현장의 여건상 어렵겠지만 학교라면 이주청소년을 끌어안고 그들을 도울 제도를 학교 안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주아동이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과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학교와 교사의 적극적인 배려와친구들이'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나 검둥이, 튀기라는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를 받아 "피부를 하얗게 수술해 달라"고 부모를 졸랐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안산 원일초등학교에서 6년째 외국인근로자녀 특별학급을 맡고 있는 손소연(41) 교사는 "이주아동을 위한 교육 시스템, 특히 특별학급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교사가 학급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학생까지 가르치기는 현실적으로 벅차기 때문에 말을 가르치고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는 예비학교 개념의 특별반 운영이 지역별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런 목적의 특별반이 운영되는 곳은 전국 8개 학교에 불과하다.

  

손 교사는 "성남 가구공단이나 인천 남동공단 등 외국인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특별반을 갖춘 초중고가 하나씩만 있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며 "주요 거점에 확실한 시스템을 갖춘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우 무지개청소년센터 다문화역량강화팀장은 "많은 이주청소년이 한국어실력만을 고려하는 학교 측에 의해 자기 나이보다 낮은 학년에 배정되고 있는데 이런 관행은 바로잡혀야 한다"며 "나이, 학습능력, 본국학제 등을 고려한 학년 배정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학교 부적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교육복지과 박영숙 과장은 "이주청소년의 공교육 진입 장벽을 없애고, 입학 후 이탈 방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며 "특히 이주청소년 주변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인식을 바꾸는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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