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차별을 넘어 ④편견의 색안경부터 벗자


등록일 2011-03-24
정보제공처 연합뉴스



 
백인엔 호의ㆍ동남아인은 무시..GNP인종차별 여전


"교과서 개선ㆍ공무원 대상 교육기회 늘려야"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한국 정부가 세계의 쓰레기들은 다 모아놓고 있습니다. 반드시 후일에 다문화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한민족을 말살하려고 의도했던 매국노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 심판이 있으리라".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한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카페에는 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를 '쓰레기' 등으로 비하하며 범죄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전세난도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을 주니까 전셋집이 줄어들면서 돈 없는 서민들은 서울 외곽으로 떠밀려 가는 것"이고, "예전에 산업연수생 제도가 없었을 때가 서민들이 그나마 살기 좋았다"며 취업난의 화살도 외국인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

  

포털사이트에는 이 카페 외에도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는 인터넷카페들이 여럿 개설돼 있다.

  

매년 총 결혼건수의 10%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이뤄지는 등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변화지만, 한편에서는 이처럼 편협한 국수주의적 시각이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

  

◇ "GNP 인종차별 여전..백인엔 호의ㆍ동남아인은 무시"

일부 인터넷카페를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감은 우리 안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편견이 발현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주여성에 대해서는 '돈 벌려 결혼했다'는 따가운 시선이 따라붙고 다문화가정의 아동은 어눌한 말투와 다소 다른 외모로 학교에서 왕따당하기 일쑤다.

  

외국인노동자는 엄연히 우리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구성원임에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터넷에서는 방글라데시나 파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온라인에서 인종차별 표현을 모니터링해 온 국가인권위원회 최 진 사무관은 "인터넷에서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표현을 막기 위한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능숙한 조선족 중국동포도 삐뚤어진 시선에서 빗겨나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동포 출신 육아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 김 모(38)씨는 "아직 4살밖에 안된 아이인데 조금 버릇없게 굴면 조선족이 키워서 그렇다고 주위에서 수군댄다"면서 "그 나이때 애들이 으레 하는 행동인데도 이유를 도우미에서 찾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조직팀장은 "다문화사회라고 얘기는 많이 하지만 아직 외국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감수성 훈련이 안돼 있다"면서 "이주여성들을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함부로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백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흑인이나 동남아, 서남아인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행태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GNP(국민소득) 인종차별'이다.

  

영어학원마다 외국인 강사들이 많지만 흑인은 찾아보기 어렵고, TV에도 우리 말이 어눌한 백인 출연자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다른 피부색의 외국인은 드물다.

  

실제 서울 종로의 한 유명 영어학원에는 외국인 강사가 22명 있지만 흑인은 1명뿐이고 교포를 비롯한 동양계 4명을 제외하면 모두 백인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는 조 모(40)씨는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흑인 선생님은 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엄연한 한국인임에도 결혼이민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다문화가정 자녀'나 '코시안'이라고 구분짓는 것이 차별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한다.

  

서울대 인류학과 김광억 교수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라는 특수한 범주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일종의 낙인찍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변화하고 있는 인식.."다문화교육 늘려야"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나아졌다.

  

2003년 국내에 정착한 몽골 출신 경기도의원 이라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버스 옆자리가 비어도 아무도 앉지 않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한민족이라는 핏줄의식이 여전히 강하다"면서 "우리도 국민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머릿속으로는 다문화를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조화로운 다문화사회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과서의 다문화관련 기술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주요 학년의 사회 교과서에는 다문화관련 단원을 따로 마련해 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소개하는 등 과거에 비해 진>올해 개정된 초등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하인스 워드의 이야기가 실려 혼혈아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다문화관련 단원만 벗어나면 교과서에 실린 가정이나 학급의 모습은 거의 예외없이 검은 눈과 검은 머리의 전형적인 한국인들로 채워져 있다.

  

여전히 한민족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5학년 도덕 교과서 저자인 한국교원대 차우규 교수는 "한민족이라는 편견까지 극복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통일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한뿌리, 한민족이라는 점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과서에서 아시아에 대한 소개는 중국과 일본에 편중돼 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 등 국내 이주여성의 모국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는 "지금까지 교과서가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강대국 중심으로 다뤘는데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그 분들의 출신국에 대한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경찰, 교사 등에 대한 다문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도 각 기관별로 다문화관련 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다문화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서 수; 

다문화 학생이 많이 재학중인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청이나 대학에서 다문화와 관련된 연수과정이 있긴 하지만 필수가 아닌데다 받아야 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성상환 소장은 "교육을 받기 전과 후의 인식태도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다르다"면서 "해당업무에 종사하는 경찰과 교사, 공무원들이 관련 프로그램을 일정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듣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3/24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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