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명의 도용에 수급비 갈취… 구제 상담·신고도 늦어
경남 창원에 사는 지적장애 3급 이모씨(46)는 지난 1월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현금을 주겠다”는 20대 남성 김모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스마트폰 2대를 개통했다. 이씨로부터 휴대전화를 넘겨받은 김씨는 이를 다른 사람에게 되팔았다. 휴대전화 단말기값, 위약금 등은 모두 이씨가 물어야 했다. 대리점과 KT는 이씨를 상대로 17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적장애인들이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늘고 있는 명의도용뿐 아니라, 수급비 갈취나 성폭력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은 사고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금전적 개념이 약해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보다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은 지난해 12월 기준 약 16만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 252만명 가운데 6%에 이른다.
■ 명의 도용 피해 늘어
지적장애인 3급 심모씨(37)는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지난해 초 일거리가 없던 차에 구인광고지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대출을 해 준다는 광고를 보고 필요한 서류를 들고 찾아갔다.
심씨는 계약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몇 장의 서류에 서명했고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 4대가 개통됐다. 심씨는 그 자리에서 5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년간 연체료 등으로 500만원의 빚을 지게 됐고,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해자들은 지적장애인들에게 접근해 금품으로 환심을 산 뒤 범행을 저지른다. 마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황현녀 사무국장은 “명의도용 상담이 한 달에 4~5건씩 들어온다”면서 “지적장애인들이 계약 내용을 확실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리점 간 과다 경쟁도 문제로 꼽힌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태곤 소장은 “관심을 갖고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지적장애 여부를 알 수 있다. 지적장애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 장호동씨는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규정과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적장애인 명의를 도용, 신용카드나 통장을 발급받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들은 상담 등 피해 구제 방법에 대한 인식이 약할 수밖에 없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뒤늦게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인 ㄱ씨(38)는 2009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속아 2개 통신사에서 휴대전화 5대를 개통했다. 통장이 필요하다고 하자 근처 은행에서 통장까지 발급받게 했다.
그는 결국 각 통신사로부터 할부금과 이용료 등 130만원이 밀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ㄱ씨의 지인이 이런 사정을 듣고 지난 4월에야 상담소에 도움 요청을 했다.
■ 수급비 유용 사례도 계속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유용 사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모자 사이인 ㄴ씨(70)와 ㄷ씨(38)는 지난 4년간 염전에서 일해왔다. 둘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고 기초생활수급자다. 이들은 임금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급비마저 염전 주인에게 빼앗겼다.
수급비 및 장애수당 갈취는 가족이나 친지, 시설 원장 등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비로 지적장애인들이 일정 소득을 얻게 되자 주변 인물들이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서동운 사무국장(44)은 “수급비 갈취는 다반사로 이뤄진다. 심지어 부모가 자기 딸의 수급비를 갈취하려 한다는 상담도 있었다”면서 “장애인 복지법에 의해 제3자가 관리를 신청할 수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복지 시설에 있더라도 원장이 장애인들의 통장을 관리할 수는 없다”고 했다.
■ 성폭력에 무방비 노출
지적장애인들은 성폭력에도 쉽게 노출돼 있다. 지난달 6일 인천에서는 지적장애 2급 ㅁ씨(39)를 성폭행한 혐의로 ㅂ씨(50)가 경찰에 붙잡혔다. ㅂ씨는 노숙 생활을 하며 알게 된 ㅁ씨를 3년간 데리고 다니며 폭력을 휘두르고 성폭행했다.
사단법인 장애여성공감의 성폭력상담소 통계를 보면 2008~2010년 성폭력 피해 장애인 가운데 지적장애인은 매년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을 관계의 단절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적장애인들은 평소 다른 사람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내기 때문에 누군가 접근해 성적 폭력을 휘둘러도 이것을 관심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치료 프로그램을 가동해도 효과가 적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지적장애인 피해자인 경우에 피해에서 회복되는 기간이 오래 걸리고, 다시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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