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의료현장에서 '적정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에는 의료인의 경제적 동기와 함께 다양한 문화·제도적 요인들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18일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한국의 의료, 과연 적정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병원의료정책 추계심포지엄에서는 적정의료를 둘러싼 다양한 현실 분석과 정책적 제안이 오갔다.
의료인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은 진료행위의 적정성을 스스로 돌아본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이 행사 시작에 앞서 "새로운 기술과 의료 질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는 현실에서 이제는 터놓고 논의할 시기가 됐다"며 "오늘 논의는 의료계 입장에서 불편한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날 행사는 적정의료의 개념과 이론을 설명한 뒤 현장에서 실제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각 분야의 교수들이 적정의료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발표하는 순서로 구성됐다.
적정의료가 쉽지 않은 요인으로 공통적으로 꼽힌 것은 바로 의료인들의 경제적 동기였다.
이활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많이 찍을수록 그만큼 수가를 받기 때문에 검사 건수를 늘리려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라며 "일부 병원에서는 영상촬영 처방을 내린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CT장비 보급률은 OECD 국가 중 미국과 함께 3위"라며 "CT 촬영 건수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환자에 대한 피폭량 기준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박규주 서울대학교 의과학교실 교수도 "로봇수술의 경우 기존 내시경보다 더 낫다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한 의사는 환자에게 비싼 부담을 주기 싫어 로봇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정확한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강경 수술에 대해 의사들이 초기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 비급여였기 때문"이라며 "모든 게 돈과 관련된 문제이며 특히 국내는 너무 유행을 좇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국내만의 문화·제도적 특수성이 적정의료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허대석 서울대의대 내과교수는 "한국에서는 임종 직전 환자의 항암제 사용률이 30%지만 미국은 10%에 불과하다"며 "한국은 대단히 의료집착적인 문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내과 교수는 "국내 병원에서 항생제가 남용되는 이유는 항생제를 오래쓰면 감염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라며 "외국의 연구자료가 있어도 외국의 상황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형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소아 의약품은 비급여 대상으로 개별인정 후 사용할 수 있는 허가초과 의약품"이라며 "소아는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임상시험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국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적정의료 실현을 위해서 관련 논의를 정례화하고 의료인·환자 간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 교수는 "적정의료는 누군가에 필요한 것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낭비와 혼란일 수 있다"며 "선택의료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분법적 근거보다는 더욱 자세한 '근거 수준'을 도입한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18 17: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