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알바 대학생, 국가장학금 ‘B학점 벽’
ㆍ신청자 15%는 탈락 … 소외계층 지원 취지 무색
지난해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ㄱ대에 복학을 준비하던 이모씨(24). 직업군인으로 전역한 아버지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생활고를 겪는 집에 손을 벌릴 수 없었던 이씨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대 후 2개월여 동안 공장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12~15시간씩 주 6일을 서서 단순 조립작업을 반복했지만 손에 쥔 돈은 300만원이었다. 연간 등록금의 3분의 1에 불과한 액수였다.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국가장학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장학금을 신청했지만 그는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직전 학기의 성적이 B학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군 입대 전 월세 낼 돈이 없어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가 학점이 나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씨는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니 계속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공부에 전념할 수 없으니 졸업을 해도 아르바이트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면서 “이런 신세를 하소연할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ㄴ대 4학년 주모씨(22)도 지난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에서 탈락했다. 가계 소득수준이 하위 30% 이내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장학금 1유형을 신청했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떨어진 것이다. 평균 학점이나 최소 이수 학점 기준을 모두 넘겼는데도 탈락 사유조차 통보받지 못했다. 다음 학기 학비가 걱정스러운 주씨는 주말마다 14시간 동안 콜센터 상담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 하고 있다.
저소득층 대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국가장학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가 곤란해 신청한 학생들의 약 15%는 장학금 지급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제출받은 ‘2012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지급 현황’을 살펴보면 기초생활수급자와 소득 하위 1~3분위 가계 대학생이 대상인 국가장학금 1유형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인원이 9만431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총 신청자 64만9292명의 14.5%에 해당하는 수치다. 가정형편이 가장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 계층에서도 9158명(해당 신청자의 14.6%)이 탈락한 것으로 나타나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 사유로는 성적 미달이 8만8458건(93.8%·중복 포함)으로 가장 높았고 직전 학기 이수 학점인 12학점 미달도 9.8%인 9250건으로 나타났다.
결국 장학금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장학금의 성적 기준을 완화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각 대학들이 상대평가를 엄격히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면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장학금을 못 받은 이들은 또다시 생계를 위해 학업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유기홍 의원은 “대학의 상대평가로 인해 소득 3분위 이하 경제적 소외계층에 지원되는 장학금이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숫자로 증명된 것”이라며 “한국장학재단이 성적 B학점 기준을 고수하면서 서울대에서도 가정형편이 곤란한 120명이 탈락하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환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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