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던 박사, 개구리 실험으로 성체세포 분화 가능성 확인
야마나카 교수, 어른 피부세포를 원시세포로 '역분화'
전문가들 "임상적용엔 아직 넘어야 할 산 많아"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영국의 존 거던 박사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에게 돌아간 것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성숙한 세포(성체세포)를 다시 처음 시작단계의 '원시세포'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포가 성숙했을지라도 그 상태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점을 새롭게 밝혀낸 것이다.
◇개구리 복제 첫 성공한 거던 박사 = 거던 박사는 요즘 동물복제에 쓰이는 '체세포 핵이식' 방식의 단초가 되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과학자다.
그는 1962년에 핵을 떼어 낸 개구리의 난자에 복제할 올챙이의 체세포(장세포)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개구리 복제에 처음 성공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이미 현재 동물복제에 기반이 되는 기술을 개발한 셈이다.
당시 거던 박사의 연구 성공은 핵을 바꾼 세포 속의 DNA가 여전히 개구리의 모든 세포로 발전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거던의 이 같은 체세포 핵이식 복제 기술은 이후 영국의 이언 월머트 박사에 의해 세계 최초의 복제동물인 양(洋) 복제 성공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고양이와 개, 소 등의 복제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거던의 기술은 동물 복제를 넘어 사람의 배아 복제에도 이용되면서 윤리적인 논쟁을 점화시켰다.
과학자들은 동물복제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동물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체세포를 떼어 내 공여 난자의 핵 자리에 넣는 방식으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에서는 불임치료를 목적으로 체외수정을 통해 얻어진 배아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도 공을 들였다.
이같은 방식은 생명체로도 볼 수 있는 난자와 배아를 사용하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종교계나 사회단체 등에서 연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체세포 역분화줄기세포(iPS)' 기술 개발한 야마나카 박사 = 이런 가운데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은 거든 박사 이후 40년이 지난 2006년 쥐의 손상되지 않은 성숙세포를 미성숙한 줄기세포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성과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동안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가졌던 윤리적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했다는 점 때문이다. 난자와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지 않고 어른 피부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처럼 전능성을 가진 원시세포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든 원시 배아줄기세포를 '체세포 역분화줄기세포(iPS.유도만능줄기세포)'라고 이름 붙였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이듬해에는 사람에게도 이같은 방식을 적용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과정은 우선 사람의 피부세포(체세포)를 떼어낸 다음 이 체세포에 배아줄기세포의 성질을 갖도록 하는 4개의 특정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 유전자는 배아가 배아줄기세포로 분화할 때 없어지는데 연구팀은 거꾸로 체세포 단계에서 유전자를 과발현시킨 셈이다.
기존 체세포 핵이식 방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다른 점은 환자에게서 추출한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해야 했던 과정이 없어졌고, 핵이식된 수정란을 배반포기배아 단계까지 배양하는 과정도 생략됐다.
단지 유전자 주입만으로 기존 배아줄기세포와 이름만 다른 유도만능줄기세포(iPS)'가 만들어진 것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만든 배아줄기세포가 신경과 췌장, 근육세포 등으로 분화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는 최근에는 쥐의 피부세포로 난자를 만들어 새끼를 낳게 하는데도 성공했다.
◇노벨상위원회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업적" = 노벨상위원회는 이런 놀라운 발견들이 세포학의 대한 기존 견해를 완전히 뒤집는다고 평가했다.
노벨상위원회는 "이제 우리는 성숙한 세포라 할지라도 그 상태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교과서 역시 이러한 발견으로 다시 써야 하며 새로운 연구 분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또 위원회는 "사람의 세포를 재설계함으로써 과학계는 앞으로 질병 그 자체는 물론,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제주대 생명과학부 박세필 교수는 "두 연구성과는 동물복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가장 큰 획을 그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면서 "노벨상은 세포를 초기화하는 기술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톨릭대의대 오일환 교수는 "과거 2천년 동안 세포는 한 방향으로만 분화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야마나카 교수는 거꾸로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서 세포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서나영 교수는 "역분화 배아줄기세포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은 물론 개인별 질병모델 확립을 통해 질환별 신약개발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데도 활용될 수 있다"면서 "난치성 질병 환자들의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문가들 "임상적용엔 넘어야 할 산 많다" = 그러나 이런 연구성과가 당장 환자에게 적용되기는 힘들다.
우선 야마나카 교수가 한대로 역분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유전자를 넣을 때 운반체로 바이러스를 넣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유전자 주입 과정에서 기존의 유전자에 상처를 줘 암세포 등의 또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역분화 배아줄기세포가 신경과 췌장, 근육 등으로 분화함으로써 기존 배아줄기세포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아직 고순도의 분화세포를 만드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노벨의학상이 이례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하철원 교수는 "보통 노벨상은 10~20년 가량 연구결과를 지켜본 뒤 수여하는데 이번 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수상자가 나왔다"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실용화 가능성을 높인 점을 크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10/08 21:2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