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든 후 줄곧 ‘수학포기자(수포자)’ 신세를 자처했던 인문계 중위권 수험생 정모(19)양은 지난주 진학을 희망하던 건국대의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완화된 이후 입시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국어Bㆍ수학Aㆍ영어Bㆍ탐구(사탐ㆍ과탐)영역 중 2개 영역 이상 2등급 이내’로 최저 기준을 제한했던 건국대가 ‘네 과목 중 2개 영역 합이 5등급 이내’로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 정양의 평소 성적은 국어ㆍ사탐 2∼3등급, 수학 3∼5등급, 영어 4등급으로 건국대 지원이 불가능했으나 수능최저기준 완화로 진학 욕심이 생겼다. 정양은 평소 점수대에 따라 등급 편차가 컸던 수학 과목에 ‘올인’해 등급 상승을 노려보기로 했다.
정양은 “아무리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많이 풀어도 좀처럼 등급 변화가 없는 영어B형보다 상대적으로 등급 변화가 큰 수학을 공략해 등급 상승을 노려보려고 한다”며 “국어ㆍ수학ㆍ영어ㆍ탐구영역 중 2∼3개 과목의 평균 등급이나 등급의 합을 요구하는 대학이 많아 원점수 상승보다 등급 상승이 중요한 만큼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일선 교사들과 대입 수험생, 입시업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고려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32개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하면서 수험생들이 그동안의 수험 전략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중 일선 교사들이 꼽는 가장 큰 변화는 정양의 사례에서처럼 수험생들 중 ‘수포자’가 줄어드는 반면 ‘영어포기자(영포자)’가 늘고 있다는 것. 서울 강북의 K고 김모(29ㆍ여) 교사는 “수능 최저기준 완화 계획이 발표된 이후부터 1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리는 영어를 포기하는 대신 수학에 집중해 등급을 올리려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다”며 “수포자들이 절반 이상에서 많게는 70%까지 됐던 예년 고3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학의 경우 다른 과목에 비해 수험생들의 매년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30점대일 만큼 수포자들이 많았다. 따라서 원점수를 조금만 올려도 등급 상승 효과는 영어보다 훨씬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게 교육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수학은 난이도가 다른 AㆍB형이 도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A형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도 수포자가 줄어든 요인이다.
서울 강남의 E고 김모(30) 교사는 “수학의 경우 단시간에 성적이 오르기 쉽지 않은 과목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등급 상승 효과를 노려볼 만한 과목”이라고 말했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학이 중시되는 자연계의 경우 수포자 자체가 없지만 수시모집에 많이 지원하는 인문계 중위권 여학생들의 경우 수포자 대신 영포자를 택하는 게 등급 상승 효과 면에서는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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