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하며 부장ㆍ과장ㆍ대리 등의 직급 대신 ‘님’ ‘매니저’ 등의 호칭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공통적이고 표면적인 취지가 있다. 하지만 대외 이미지 개선, 직급으로 인한 갈등 방지 등 호칭을 통일하게 된 속사정과 기대 효과가 기업마다 다르다.
CJ는 10여년 전 앞장서서 ‘호칭 개혁’을 실시했다. 상사직원과 부하직원 상관없이 서로를 ‘님’으로 부른다. 심지어 이재현 회장도 사내에선 ‘님’으로 불린다. 이런 내부 문화는 채용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 것이다. CJ 관계자는 “구태를 싫어하는 청년들에게 호감을 얻어 재계 14위 규모의 CJ가 취업 선호도에서는 3위를 차지하게 됐다”며 “직원들이 얼마 전 이재현 회장을 응원하기 위해 사내게시판에 만들었던 대화방 이름도 ‘이재현님 대화방’이었다”고 설명했다.
호칭 통일은 ‘똑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만큼 공평하게 일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SK는 공통 호칭으로 ‘매니저’를 사용한다. 회사 규모가 성장하면서 인사적체가 발생해 상위 직급 인원이 증가한 것이 그 배경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현업에서 손을 놓는 것이 일반적인 국내 기업 문화다보니 점점 일할 사람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SK 관계자는 “직급이 올라가도 현장에서 열심히 뛰라는 뜻”이라며 “호칭이 모두 같아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은 경우에도 표시가 안 나는 장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KT는 KTF와 합병되는 과정에서 사내 구성원 간 융합의 필요성을 느껴 ‘매니저’ 호칭을 도입한 경우다. 다른 두 회사가 합쳐지다 보니 같은 직급 내에서도 경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있고 같은 직책 내에서도 직급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구 KT 직원들 중 고졸 출신들도 있어 직책은 낮지만 경력이 오래됐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배려가 됐다.
직급, 직책, 존칭을 모두 떼고 영어 이름만 쓰는 기업도 생겼다. 부르기에 간편한 데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카카오는 관계자는 “부서나 팀별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상황에 맞게 프로젝트별 TF를 구성해 일한다”며 “따라서 팀장이 팀원이 되기도 해 직급이 따로 필요 없다”고 말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석우 대표는 ‘Vino’, 이제범 공동대표는 한글 이름의 이니셜을 딴 ‘JB’, 창업자 김범수 의장은 ‘Brian’라는 영어 이름을 쓴다.
직급이 사라지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각양각색이다. CJ의 한 직원은 “서로를 ‘님’으로 부르는데 다른 팀과 회의할 때 서로의 근속연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동안’이나 ‘노안’ 직원들은 사실과 다르게 선배 대접을 받거나 후배 취급을 당하는 억울한 일도 발생한다”고 전했다. 카카오에서는 영어이름을 부르다보니 서로 한국이름을 잘 몰라 회사로 택배가 오면 직원검색을 통해 이름을 찾아주는 불편함이 발생하기도 한다.
임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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