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14-06-30
(세종=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이 다음 달 1일로 도입 50년을 맞는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던 1964년 도입된 산재보험은 급격한 산업화 시대에 산재 근로자의 치료와 소득을 뒷받침해주는 안전판 역할을 했지만, 근로자가 혜택을 받기 어려운 제도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건강보험(1977년), 국민연금(1988년), 고용보험(1995년) 등과 비교해 산재보험이 일찍 도입된 배경은 물론 산업재해라는 급속한 산업화의 부작용이다.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박힌 안전불감증까지 더해져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천명이 넘는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정부 공식 통계에서 산재 사망 근로자 수가 2천명 아래로 내려간 것도 불과 2009년(1천916명)부터다.
노동계는 지난 13년동안 산재 노동자가 118만명이라는 정부 통계가 사실과 다르며 실제 산재 노동자 수는 정부 공식 통계의 30배가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외형 성장…보험급여 총액 56조원
산재보험은 50년 동안 적용 사업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
1964년 500명 이상 광업ㆍ제조업 사업장 64곳의 근로자에게만 적용됐던 산재보험은 2000년부터 1인 이상 전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197만7천57곳으로 1964년의 3만891배에 이른다.
적용 근로자 수도 8만1천798명에서 1천544만9천228명으로 189배 늘었다.
지급 건수는 1965년 2만2천200건에서 2013년에는 303만3천432건으로 136.6배 늘었고, 보험급여 종류도 6개에서 10개로 확대됐다.
50년동안 산재보험 혜택을 받은 근로자는 모두 445만명, 보험급여 지급총액은 56조원에 이른다.
◇ 근로자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산재는 산재로 인정해야"
산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산재 혜택을 받는 근로자는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1995년부터 산재보험 집행업무를 맡은 근로복지공단은 엄격하게 산재 인정범위를 판단하는 탓에 해마다 산재 근로자와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3년 공단이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린 2만916건 중 1천556건의 산재신청 근로자가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확정판결 1천417건 중 195건은 공단이 패소했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산재예방에 힘쓰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산재보험 시행과 함께 도입된 개별실적요율제도는 산재 은폐 수단으로 악용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산재 발생 정도에 따라 최대 50%까지 보험료를 감면해주다 보니 산재를 공상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등장한 대리운전기사, 텔레마케터, 신용카드 모집인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적용제외 신청제도 때문에 이들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게 산재보험은 의무 적용 사항이 아니라 선택 적용 사항이 됐다.
2013년 말 기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률은 9.83%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는 연말까지 개별실적요율제를 손질하는 한편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확한 산재 통계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산재발생 보고는 요양급여 신청서로 가능했다.
그러나 요양 개념에는 통원치료, 약물치료 등도 포함돼 있어 부상, 질병 정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산업재해 발생 보고를 요양급여 신청 등으로 갈음할 수 있는 제도를 폐지한다.
대신에 산재발생 시 사업주가 1개월 이내에 조사표를 직접 제출하도록 했으나 산재 노출을 꺼리는 사업주가 보고를 빠뜨리거나 공상 처리할 가능성 때문에 정확한 통계 산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재 근로자의 낮은 직업복귀율도 산재보험이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국내 산재 근로자의 직업복귀율은 2013년 50.9%로 스위스(2010년 86%), 미국 오하이오주(2007년 90%)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재보험 제도가 발전하려면 단순히 재해가 발생했다거나 재해율이 높다는 것만으로 기업에 불이익을 주기보다는 예방과 보상을 완전히 분리하고 산재보험료율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성대 박두용 교수는 최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현재 0.56%인 산업재해율이 왜곡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간인 2.5%를 목표로 잡아 산재를 거의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성 재해는 100% 인정해주면서 기업에는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게 근로자를 보호하고 기업도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minor@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4/06/29 15:3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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