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칭찬으로 자존감 높여주고 약물치료 병행하면 큰 효과
ㆍ교사·부모가 함께 고민해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정훈(가명)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교 수업시간에 항상 과한 장난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괴롭혔다. 당연히 학업 성적도 좋지 못했다. 고민 끝에 담임교사는 정훈이에게 정신과 진단을 받도록 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이 나와 정훈이는 상담과 단기 투약을 병행했다. 어떤 꾸지람에도 꿈쩍하지 않던 정훈이는 몇 주 지나지 않은 요즈음 침착하고 의젓한 아이가 됐다. 적극적인 치료가 아이를 변화시킨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가연(가명)이도 매사에 주눅이 든 행동을 했다. 어려서부터 시설에서 자랐고 후에 함께 살던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영향이 컸다. 가연이는 주위 사람을 불신해 교우관계도 좋지 않았고 자주 ‘자살’을 이야기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았다. 하지만 칭찬이 가연이를 180도 바꿨다. 의사가 정신과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가연이가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재능도 있다는 점을 발견해 칭찬한 것이다. 가연이는 그 후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1등을 했고, 자존감이 높아지자 학업 성적도 자연히 좋아졌다.
“우울증이나 ADHD는 ‘정신병’이 아니라 ‘마음의 감기’입니다. 최대한 빠른 상담, 치료가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에서 120여명의 학부모와 상담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 마음건강 이해를 돕는 정신건강 교육’ 강연이 이뤄졌다. ‘관심군 학생’들의 심리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심리가 불안한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한 행사였다.
‘관심군 학생’이란 교육부에서 매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학교의 지속적인 관리와 2차 조치가 필요한 학생들을 말한다.
올해는 초등학교 1·4학년, 중 1학년,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이 검사가 실시됐다. 학생들의 자필검사를 판단 기준으로 해 검사 결과가 100% 맞진 않지만, 정서불안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조기에 진단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날 ‘관심군 학생의 이해’를 주제로 강연한 ‘마음건강 ONE-STOP 지원센터장’ 이상은씨는 “제때 진단, 제때 치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초등 저학년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 ADHD의 경우 “감기처럼 너무나도 간단한 병”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ADHD는 신경학적·의학적인 접근이 필수”라며 “보통 정신과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많지만, 50년 넘게 이 치료에 약물치료가 병행돼 왔으며 약물투여 효과는 75~85%에 달한다”고 말했다. 보통 약물치료는 최장 2년까지만 진행되고 상담 등이 병행되며, 약물치료를 중단한 후에도 효과가 지속되므로 오남용·부작용 등에 대해선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ADHD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수적인 이유는 보통 다른 종류의 정신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품행장애(ODD), 반항장애(CD), 과잉공격성, 사회성 저하, 우울감 등 정서장애는 ADHD의 특성에 따라 부차적으로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행동이 과도하고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는 ADHD의 특성상 윗사람의 반복되는 꾸짖음에 반항심과 공격성이 늘고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교우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ADHD를 치료하면서 아이 특성에 맞는 적절한 상담을 통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면 부차적인 정서장애도 치유돼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제때 진단,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씨는 “몇 년 새 급속히 우리 사회에서 ADHD에 대한 관심·우려가 높아졌고 많이 회자되다보니 과잉 진단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아직도 현재 ADHD 아이들 중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경우는 10분의 1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제때 진단·치료를 받기 힘든 주된 이유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ADHD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주로 정신장애 증상들은 혼자 떨어져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뚜렷이 나타난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기 힘든 맞벌이 부모나 집에서 아이를 항상 돌보는 부모들도 아이의 증상을 눈치채기 힘든 것이다.
이런 경우 아이의 학교생활을 돌보는 교사들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씨는 “요새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의 증상이 심한데도 아예 눈치를 못 채고 있다가 학교 공개수업에 가서 아이의 상태를 보고 놀라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며 “아이가 사회생활하는 모습을 가장 긴 시간 관찰할 수 있는 교사들이 아이의 이상 징후를 곧바로 부모에게 알려 빨리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부모 등 주변 사람이 ADHD 아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이해와 대처를 해야 한다.
이씨는 “ADHD 아동은 또래보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데, 이러한 미성숙은 심리적으로 잘못된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신경학적 미성숙에서 오는 것”이라며 “아이의 결함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해야 아이의 변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ADHD 아동은 과제나 지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며, 인과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행동은 잘하고 특정 행동은 잘 못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것은 아이들의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므로 ‘넌 왜 이렇게 못하니’라며 다그치는 것은 외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또래 아이들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미성숙함을 그대로 이해하고 치료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이 조력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와는 별개로 일상적으로 ADHD, 우울증 등 아이의 정서장애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은 마음건강 ONE-STOP 지원센터(상담전화 02-3999-457, 677, 678)로 연락해 예약하면 언제든 상담·치료 기관과의 연결이 가능하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저작권자ⓒ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는 디지털뉴스 저작권신탁관리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하는 기준과 방법에 따라 이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