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불신 주장의 오해와 진실


등록일 2013-03-04
정보제공처 연합뉴스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도입 공약 실천과정에서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또다시 자극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런 계획을 철회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국민연금 가입자 이탈도 현실화했다.

국민연금 폐지 운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에도 재정 안정화 논란 속에 한 차례 '국민연금 거부 운동'이 있었다.

반복되는 국민연금 폐지 운동의 배후에는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이 정치인들의 공약 실천을 위한 '쌈짓돈'처럼 쓰일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여기에 과장된 우려와 오해가 뒤섞이면서 빚어진 막연한 불신도 한몫했다.

국민연금 폐지 운동에 영향을 미친 여러 주장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본다.


◇국민연금의 기회비용은 저소득층이 더 크다? = 국민연금은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에게 더 높은 급여율을 적용하고 있어 설계 자체는 저소득층에 더 유리하다. 연금보험료로 낸 금액 대비 급여액 비율, 즉 '수익비'가 저소득층일수록 더 높다는 뜻이다.

2011년부터 40년간 가입했다고 가정했을 때 최하위 소득자(월 평균소득 23만원)는 4.3배, 평균 소득자(월평균소득 188만원)는 1.8배의 수익을 얻는다. 따라서 고소득자라고 해서 자신이 낸 돈보다 받는 돈이 적은 것은 아니다. 최상위 소득자(월평균소득 375만원)의 수익비도 1.3배다.

이는 국민연금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니는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도 있다.

먼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오래 살아 연금을 받는 기간도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11년 내놓은 '사회계층별 차별 사망력과 공적연금제도' 보고서를 보면 소득 상위 50%인 남성이 60세에 도달했을 때 기대여명은 1929년생이 22.26년, 1949년생이 27.94년이었다. 반면 하위 50%의 경우 1929년생이 19.95년, 1949년생 23.98년으로, 2.32∼3.96년의 차이가 있다.

또 저소득층 가운데 상당수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가입했더라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변수다.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그만큼 나중에 받게 될 연금액이 줄어든다. 이처럼 소득이 없어 보험료 납부가 유예되는 '납부예외자'로 분류된 사람은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의 22.9%(467만명)에 달한다.


◇국민연금보다 사보험이 더 유리한가? = 국민연금 제도가 폐지된다면 우리는 민간보험사의 사적연금을 통해 노후자금을 운용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사보험과 달리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급여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항상 실질가치가 보장된다. 즉, 연금액이 보험료 납부 시점이 아닌 연금 수혜 시점의 현재가치로 환산해 산정되는 것이다.

반면 민간보험사가 판매하는 개인연금은 계약 당시 약정한 금액만 지급하기 때문에 물가 인상분이 연금액에 반영되지 않는다. 물가가 계속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연금수령 시점의 연금액 실제가치는 가입시점보다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 법이 개정돼 급여율이 낮아지더라도 개정 전 가입기간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인하된 급여율이 소급적용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급여율이 평균소득월액의 60%에서 2009년 이후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축소되지만, 개정법 시행 전부터 연금을 받고 있던 수급자는 계속 급여율 60%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는다.

아직 연금 수급 연령이 되지 않은 가입자는 개정법 시행 전 가입기간에 대해서는 종전 규정대로 60%의 소득대체율을 인정받는다.


◇가입자가 사망하면 한 푼도 못 받는다? = 국민연금은 사망 전까지 평생 받고 사후에는 생계를 함께한 배우자나 자녀 등 유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연금 액수는 가입기간과 가입 중의 소득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처음에는 소득 유무와 관계없이 3년 동안 지급받게 된다. 3년 후에는 유족의 월평균 소득이 189만1천771원(2012년 기준)을 넘으면 지급이 중단됐다가 유족이 만 55세에 도달하면 소득에 상관없이 연금이 계속 나온다.

부부가 연금 수혜자일 때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남아있는 배우자는 본인의 노령연금 전액과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유족연금의 20%를 함께 받을 수 있다.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유족이 없을 때는 장례비 부조, 보상 차원에서 더 넓은 범위의 유족에게 사망 일시금이 지급된다.


◇국민연금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다? = 최근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 과정에서는 국민연금 구조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와 유사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초기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가입자가 줄어들면 파산하는 것이 다단계 구조를 악용한 사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자신이 낸 돈을 그대로 찾아가는 개인연금ㆍ저축과는 물론 다르다. 수급자(노인 세대)에게 주는 연금을 현 세대(젊은 세대)의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면에서 다단계 피라미드(폰지 게임)와 유사한 방식을 취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민간회사가 아닌 국가가 운영한다는 점에서 다단계 사기와 차이가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측도 국가가 최종적으로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반드시 지급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기금을 적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용한다. 노인들의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정을 그해 세금으로 걷어 지급하는 방식을 사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단 측은 "재정위기에 처한 그리스에서도 연금을 지급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공적연금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170여 개국에 달하지만, 연금지급을 중단한 국가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금 고갈 이후 현재의 '적립 방식'이 '부과 방식'으로 바꾸면 세금 납부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예상되는 특정 세대의 반발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고령화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지난 20일 자로 40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기금 자산은 설치 첫해인 1988년 5천279억원이었다. 2003년 5월 100조원, 2007년 4월 200조원을 각각 넘어섰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391조9천677억원이었다.

막대한 기금이 쌓여 있지만 거둬 들이는 보험료보다 연금 수혜액이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래의 국민연금 재정 고갈은 필연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2041년 949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급격히 줄어들어 2059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고령화는 연금을 받을 사람보다 보험료를 낼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3년 실제 노년부양비는 52.0으로 핵심생산가능인구(25~49세)인 젊은이 2명당 65세 이상의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2040년에는 노년부양비가 119.9로 젊은이 1명당 65세 이상의 노인 1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노년부양비 부담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미래 가입자의 부담은 크게 늘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정부와 공단은 5년 단위로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시행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한다.

2007년에는 연금 개혁을 통해 현재 가입자의 급여액을 인하함으로써 기금고갈 시기를 연장하고 적립금 규모를 늘렸다.


◇'유리지갑' 근로자 계층이 연금을 집중적으로 부담한다 = 2011년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1천988만5천명이다. 이중 직장 가입자는 1천97만6천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55%를 차지한다.

지역 가입자 수는 867만5천명인데, 이 가운데 소득신고자는 377만6천명이고 납부예외자도 489만9천명에 달한다.

2000년 기준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는 각각 5천766천명, 1천41만9천명이었다.

약 10년 새 직장 가입자는 배 가까이 늘었지만, 지역 가입자는 소폭 줄었다.

지역 가입자 중에서도 납부예외자(444만6천명→489만9천명)는 계속 늘고 있지만 소득신고자(597만3천명→377만6천명)는 오히려 줄었다.

'유리지갑'인 근로자들이 연금 보험료를 집중적으로 부담한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나왔다.

또 자영업자 등 지역 가입자는 일부러 소득을 낮게 신고해 연금 부담액을 줄일 수 있지만, 직장 근로자는 고스란히 소득과 연계해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불만이 있다.

지역 가입자라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 방식의 차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의 절반인 4.5%를 고용주가 부담하고 나머지 4.5%는 근로자의 임금에서 원청징수된다.

반면 지역 가입자는 보험료 9% 모두를 가입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지역 가입자 입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공단 측은 "국민연금은 기여와 급여 수준이 연계되기 때문에 근로자 계층이 부담하는 만큼 혜택을 받는 구조"라며 "자영업자들의 소득활동 여부와 소득 파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담과 설득을 통해 자발적인 보험료 납부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기금이 경제를 망친다? = 한국처럼 막대한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일본, 미국, 스웨덴, 캐나다 등에 불과하다. 대부분 국가는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정을 그해 세금을 걷어 마련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한국의 국민연금 적립금은 349조원으로 2011년 국내총생산(GDP)의 29.2%에 달했다.

GDP 대비 연금비율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 30년 후에는 GDP의 50% 이상이 될 전망이다.

기금 규모가 큰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GDP 대비 연금비율은 높은 편이다. 일본과 스웨덴의 GDP 대비 연금비율은 각각 30%(2004년), 30.2%(2007년)가 최고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금 고갈에 근접한 시점에 국민연금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산을 매각해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금 증식기에는 자산을 사들여 시장을 부양하는 효과가 있고 반대로 축소기에는 연금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보유채권과 외화자산을 대량으로 팔 수밖에 없어 주식시장은 물론 채권ㆍ외환시장에도 상당한 왜곡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말 기준으로 전체 기금의 99.9%인 391조 5천683억원을 금융부문에서 운용했다.

금융부문 자산을 세부 유형별로 보면 국내채권 235조8천억원(60.2%), 국내주식 73조3천억원(18.7%), 해외주식 31조3천억원(8.0%), 해외채권 18조1천억원(4.6%), 국내 대체투자 18조3천억원(4.7%), 해외 대체투자 14조7천억원(3.7%) 등이었다.

국민연금의 '거대화 리스크'에 대비해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할 필요성은 있다.

공단은 기금 성숙기에 자산 매각 시 원활한 유동성 확보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마련하고 있으며, 운용수익을 높이기 위해 국내채권 비중은 줄이고 주식과 해외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3/04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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