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부정시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특별 관리비인 '장기수선충당금'이 관리체계 부족으로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엘리베이터 수리나 교체, 외벽 도색 등 아파트 건축물의 안전 관리를 위해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에 필요한 금액을 아파트 소유주로부터 징수한 적립액으로, 실거주자에게 부과되는 일반관리비(난방비, 급탕비, 경비비 등)와는 구별되는 항목이다.
전국적으로 3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의 연간 관리비 규모는 100억원 이상으로, 전국 관리비 총액분이 연간 10조원을 상회한다. 특히 현행 주택법상 300가구 이상, 혹은 승강기가 설치된 공동주택의 경우 의무적으로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일정 금액을 적립하도록 돼 있지만 관리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장부상 13억, 실제로는 10억만..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 발족한 '맑은 아파트 만들기 민관합동 추진단'의 공동주택관리비 실태조사 결과 장기수선계획 및 충당금을 형식적으로 계획하고 수립한 뒤 목적 외 유용한 사례가 상당수 드러났다. J단지의 경우 장기수선충당금을 본래 목적이 아닌 입주자대표 소송 관련 비용 1억1100만원 등 총 1억9000여만원을 용도 외로 부당 집행했고 K단지는 장부상으로는 총 13억8500만원이 예금돼 있어야 하지만 통장 잔고 확인결과 10억2100만원만 남아 차액 3억6300만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주택법상 장기수선충당금의 요율, 산정방법, 적립방법 및 사용절차와 사후관리 등에 관한 세부사항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지역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재직중인 김모씨는 "공동주택관리시스템에 관리비 징수 내역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 의무지만 세부적으로 장기수선충당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기입하는 것은 권고사항일 뿐 아무 강제성이 없다"고 전했다. 송파구 잠실동 J 아파트 거주 박모씨도 "매달 납입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이 1만원도 되지 않지만 전체 적립액이 30억원 가까이 되는 것을 보고 과연 이게 어떻게 쓰이고 관리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동주택 관리체계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리비 내역을 공동주택 관리시스템에 공개하고 장기수선충당금의 월별 부과액과 월사용액 및 총 적립금액, 적립율을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충당금 사용내역은 권고사항일 뿐 자세한 내역은 해당 아파트 관리업체에 문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과 관계자도 "장기수선충당금 적립금액 현황과 사용 내역을 상시 점검하고 있지만 수선공사 이력과 장기수선충당금 집행내역 및 적립금을 공개하는 부분에서 현행법상 관련 기준이 미흡하다보니 어려움이 따른다"며 "불법으로 사용한 금액은 법적 조치를 취하게 하고 있지만 사전 예방 차원에서 해당 금액을 다 공개하는 것은 현실상 제약이 있다"고 털어놨다.
■법상 이자 사용액 관련 규제도 없어
주택법상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액에 대한 '이자금액' 역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지역 한 아파트의 동별 입주자 대표는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액 10억원에서 발생되는 월이자는 대략 250만원 정도인데 보통 5년이상 만기적금을 들었을 경우 이자만 수천만원대로 커지게 된다"며 "보통 장기수선충당금과 함께 이자금액을 이월 적립해 사용하고 있지만 주택법상 명시돼 있지 않은 부분이어서 어떻게 관리비 청구내역에 공개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아파트 입주민은 "장기수선충당금 이자가 매년 수억원씩 발생하지만 아파트 관리소장은 2011년부터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라는 계정을 더 만들어 놓고 장기수선충당금 이자전액과 기타잡수입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이자를 합산, 장기수선계획 외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자연수 이현성 변호사는 "통념상 당연히 장기수선충당금에 대한 이자액도 장기수선계획의 재원으로 사용되는 게 맞다"면서도 "법적으로 이에 대한 용도나 사용 규제가 불분명한만큼 구체적인 장기수선계획 수립 기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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