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여·43) 씨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요즘 들어 아이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검사를 마친 후 김 씨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아이에게 ‘과잉학습장애’ 증상이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더 심각해지기 전에 아이의 공부량을 지금의 반으로 줄이라”고 조언했다. 김 씨의 아들은 평일에만 6개의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방과후부터 늦은 밤까지 휴식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 채 학원 수업과 과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 씨는 5일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돼 조금 무리해서 시켰던 사교육이 오히려 아이에게 걸림돌이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같은 지역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3) 군도 최근 정신과에서 ‘과잉학습장애’ 진단을 받았다. 김 군은 중학교 1학년이지만, 이미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배울 정도로 선행학습에 치중하고 있다. 김 군은 방과 후 30분가량의 휴식시간을 빼고는 자정 무렵까지 6∼7시간 동안 심야 과외를 받는다. 진단 결과 김 군의 스트레스 지수는 일반인 평균의 두 배 수준으로 최근에는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불안증세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과도한 학습으로 인해 불안감을 호소하거나 원형탈모 증상 등 ‘과잉학습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잉학습장애’는 보건 당국이 정하는 정식 질병으로 등록돼 있지는 않아 정확한 추이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최근 정신과나 뇌과학 전문의들은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 지역 M 정신과 한 전문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탈모 증상을 보이는 아동과 청소년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한 달에 4∼5명은 이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탈모클리닉에도 아동 탈모 환자가 많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남구 Y 탈모클리닉 원장은 “사교육 열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강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아동 탈모환자가 두 배 이상 많은 편”이라면서 “아동 탈모의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학습량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갖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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