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외국인 근로자 없으면 농사도 고기잡이도 못해'


등록일 2015-11-17
정보제공처 연합뉴스



'코리안드림'과 '싼 인건비'에 수요·공급 증가
"인건비 싼 외국 근로자"는 옛말…80% 수준 넘어


(안동·여수=연합뉴스) 이강일 정회성 기자 =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나르시카 밀란드(25)씨는 지난 4월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의 작은 어촌마을에 정착했다.

고향에서 5t 트럭을 몰던 운전기사였던 밀란드씨는 이곳에서는 난생 처음 고기잡이 일을 한다. 이른 새벽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나가 그물을 걷어올려 새우를 잡는 일을 돕는다.

낯선 땅에서 힘든 노동으로 보내는 하루가 고되지만 매달 가족에게 100만원씩 부치는 순간을 떠올리며 기운을 낸다.

고용주의 사랑방에서 생활하지만 방에 인터넷과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스마트폰도 마련해줘서 날마다 고향 소식도 들을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열심히 돈벌어 고향에 돌아가면 내 트럭을 장만하는게 꿈"이라고 바램을 말했다. 

밀란씨를 고용한 어민 정육철(67)씨는 "나이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섬이라서 일손 구하기도 어려워 밀란드 없으면 조업을 할 수 없다"며 "낯선 땅에 돈벌러 온 밀란드가 안쓰럽고 고맙기도 해서 내년 여름 금어기에는 비행기표를 끊어 고향에 보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네팔에서 온 타망 라치미(27)씨는 전남 담양군 무정면 방울토마토 재배 농가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 라치미씨는 네팔에서 함께 온 동료 2명과 함께 숙식을 해결하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께까지 시설하우스 일을 한다.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초기에는 한국의 빠른 일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이제는 동료들과 함께 농가 살림을 도맡아 한다.

주말이면 가까운 광주로 나가 같은 처지의 네팔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어 교실에도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맵고 짠 음식도 어느덧 익숙해져 '이제 한국사람이 다 됐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매달 농사일로 버는 130여만원 가운데 100만원을 가족에게 부치는 라치미씨는 막내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콤바인으로 벼를 베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놀랐다"며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배우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다"고 했다.

전남 고흥군 도덕면에서 토마토 농사일을 돕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 폰 부티(33)씨는 평범한 회사를 그만두고 4년 전 한국에 왔다.

캄보디아에서 한국돈으로 15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던 부티씨는 이제 매달 150여만원을 벌어 고향에 농토를 장만하고 새집도 지었다.

이주 초기 문화적 차이로 고용주 가족과 오해를 빚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향보다 한국 생활이 더 익숙하다.

부티씨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땅에 직접 농사를 짓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한국 생활이 아쉽기도 하다.

부티씨 등 3명의 캄보디아 노동자를 고용한 김종률(63)씨는 "이들이 일을 빨리 배우는데다 이직을 안하며 지금까지 함께 일해 정말 고맙고 든든하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어민을 일부에서는 비판적으로 보지만 이는 농촌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주노동자가 모두 떠나면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농촌뿐만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까지 위태로울 것"이라며 "정부가 농촌 인력 수급을 위해 관련 정책을 잘 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코리안드림'을 갖고 일하지만 그들을 고용하는 한국인 농축산업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 김모(54)씨의 돼지 농장. 돼지 5천여마리를 사육하는 이 농장에는 한국인 3명과 미얀마 출신의 Y(40)씨 등 4명의 근로자가 일한다.

입국한 지 34개월째인 Y씨는 아침에 일어나 돼지우리 분뇨 치우기부터 시작해 사료 주기 등 농장 전반의 일을 한다.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는 하지만 항상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손에 쥐는 임금은 한국인 근로자 임금의 80% 정도이다.

농장주 김씨는 Y씨를 데려오기 전에 베트남 출신과 중국 동포를 고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을 익히는 능력이 빠른 베트남이나 중국동포 출신 근로자는 시간이 지나면 당초 계약 때보다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김씨는 업무 숙지 속도는 다소 뒤떨어지더라도 다른 국가 근로자보다 순박한 미얀마 출신을 택했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Y씨가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이런 상황은 경북 북부지역 대부분 축산농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같은 나라 출신 동료가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말 등에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한 뒤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 

외국인 근로자가 임금이 적다며 떠나면 농장주는 또 다른 외국인 근로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농장에서 일할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국인들은 농장일보다 공공근로 등 육체적으로 수월한 일을 해도 비슷한 금액의 돈을 벌 수 있다. 몇 개월 일을 하고 그만두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힘든 농장·목장 일을 할 이유가 없어서다.

이런 현상으로 축산 농가에서는 "싼 맛에 외국인 쓴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고 한다.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서 100여마리의 한우와 젖소를 키우는 김인동(54)씨 목장에서는 얼마 전 일하던 중국 교포 여성이 그만뒀다.

중국 교포는 김씨의 목장에서 소 분뇨 치우기, 젖 짜기, 사료주기 등 일을 맡아서 하면서 월 16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일이 숙달되자 '몸이 아프다'는 등 이유를 대며 우회적으로 임금을 올려줄것을 요구하다 수용되지 않자 농장을 떠났다.

중국 교포가 떠난 뒤 그는 다른 외국인 근로자를 찾지 못했다. 또 의사소통 문제로 일 처리 능력이 한국인과 비교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에게 많은 임금을 주는 것도 마땅하지 않아 아내와 농장일을 하고 있다.

안동, 예천, 영주 등 경북북부 축산농가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인 근로자를 쓰거나 가족끼리 농장 일을 해결하고 있다. 일부는 사육하는 가축 수를 줄이거나 전업을 고려하기도 한다.

안동 와룡면의 농장주 김씨는 "우리나라 축산업은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축산업 전반에 인력 수급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부 차원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동의 또 다른 한 농장주는 "국가가 인력이 부족한 제조업에 지원을 하듯이 축산현장과 같이 인력을 구하기 힘든 곳에도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과 임금차이와 관련해 외국인 근로자들도 나름 불만이 있다. 일을 충분히 익히기 전이면 몰라도 몇 년이 흘러 똑같은 일을 같은 효율로 처리하는데도 임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안동 와룡면에서 만난 한 베트남 국적의 노동자(37)는 "한국에 온 지 1년만 되면 웬만한 한국인보다 일을 더 잘하게 되고, 분뇨처리 등 한국인이 꺼리는 일을 모두 처리하는데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돈을 적게 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leek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11/17 06:20 송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