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5가구 중 1곳꼴 임대료 밀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김모씨(67)는 서울 성북구의 72.72㎡(22평) 규모 임대아파트에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보증금 1710만원을 넣어두고 임대료(23만원)와 관리비 등 ‘방세’로 한 달에 30만~35만원을 낸다.
김씨는 아들에게 지병이 있어 치료비를 대다보니 2009년 1월부터 방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를 메우느라 친구에게 250만원, 사채로 500만원을 빌려썼다. 하지만 빌린 돈의 이자와 생활비를 대다보니 임대료는 계속 밀렸다. 수개월간 월세 150만원, 관리비 120만원 등 약 270만원을 연체했다. 연체금만큼 보증금을 깎아오던 아파트 관리소는 그해 4월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앞서 2008년 김씨는 아들 치료비와 생활비 때문에 집 계약서를 담보로 사금융에서 돈을 빌려썼다. 대부업체는 ‘임대인의 권한이 있다’며 김씨에게 명도소송(강제퇴거를 위한 법적 절차)을 걸었다. 김씨는 명도소송 패소 직전인 2009년 9월 성북주거복지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고, 1년간 매월 10만원씩 지원받기로 했다. 김씨는 친구에게 또 다시 돈을 빌려 사채를 갚았고, 지난 1월에야 연체료 지불을 완료해 아파트를 재계약했다. 성북주거복지센터의 정훈희 사무국장(40)은 그러나 “소득이 적은 김씨 가족은 언제든 다시 퇴거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모씨(68)는 독거노인이다. 함께 살던 아들은 지난해 초 사기를 당해 사업이 망하자 행적을 감춰버렸다. 소득이 없는 윤씨는 지난해 8월부터 방값이 밀리기 시작해 연체 9개월째인 지난 4월 월세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던 터였다. 구청에 긴급자금을 신청했지만 서류상 아들이 있어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강북주거복지센터 이필성 과장(39)은 “일단 노숙인 생활시설을 소개해드리고 연체금 270만원을 지원했다. 노숙인 시설에서 3개월을 보낸 뒤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임대주택에서 ‘방값’이 밀려 강제퇴거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임대료와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은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극빈층 주민들이 임대주택에서 밀려난 뒤 구제받을 수 있는 정책이나 제도가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임대료 연체에 의한 강제퇴거 현황과 대응’ 자료(2011년)를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한 임대주택의 임대료 연체비율은 지난해 12월말 현재 21.5%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임대료가 밀려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유선호 의원이 발표한 자료(2010년)에는 2006년부터 2010년 6월까지 LH가 공급 관리 중인 영구임대주택 14만78호 중 임대료 연체로 명도소송을 당한 경우가 1만57건, 이중 최종 판결을 받은 경우가 5446건으로 나타나 있다. 강제집행을 당한 경우는 325건이지만 소송과정에서 자진퇴거한 경우도 1863건이나 돼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임대료가 없어 쫓겨난 경우는 모두 2188건에 이른다.
‘표준임대차계약서’상 임대비 연체가 3개월 이상 계속되면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임차인이 연체료를 내지 않거나 퇴거하지 않을 경우 임대인은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이 끝나도록 퇴거하지 않을 때는 강제집행도 가능하다.
LH나 서울시 산하 SH공사 등에서 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저소득층이 살기 때문에 3개월 이상 연체된다고 곧바로 퇴거조치 하지는 않는다. SH공사 관계자는 “임대료가 많이 밀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그 소득으로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도록 하고 있어 강제퇴거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북주거복지센터의 남철관 국장(42)은 “강제퇴거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 임대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연체비율도 높고 퇴거당하는 경우도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윤이 연구원은 “임대료 연체 이유는 소득 감소, 의료비 증가, 실업 등 다양하다”며 “문제는 임대료 연체 가구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