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청각장애인에게 비장애인 수준 영어능력 요구는 부당”
국가인권위원회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중증 청각장애인에게 영어능력시험 점수 기준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적용한 것은 ‘간접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ㄱ사에 채용시험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간접 차별은 외국에서는 널리 인정되지만, 국내에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인권위는 2008년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간접 차별 조항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여성계는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사내 부부에게 우선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대다수 여성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은 간접 차별이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바 있다.
중증 청각장애인 ㄴ씨는 “ㄱ사가 2010년도 상반기 대졸신입사원 채용 시 지원자격 중 영어능력시험 점수 기준을 정하면서 중증 청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정했다”며 지난 8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ㄱ사는 2010년도 상반기 채용공고에서 지원자격 중 하나로 토익 600점과 텝스 480점 이상의 영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했다. 회사 측은 “해당 직무 수행상 일정 수준의 영어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그러나 “토익·텝스 시험에서 듣기 비중이 40~50%인데 중증 청각장애인은 독해(읽기)시험을 만점 맞는다 하더라도 ㄱ사가 정한 점수를 얻기는 어렵다”며 “이는 청각장애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밝혔다. 또 “채용 분야 직무내용 중 핵심업무가 IT사업 기획과 서비스 발굴, 신기술 개발 등이고, 회사가 모집대상을 이공계열 전공자로 하고 있으며, 근무지 역시 국내인 점을 감안할 때 영어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행정안전부는 2008년부터 국가공무원 5급 임용시험에서 비장애인의 50~66%에 해당하는 점수를 청각장애인 지원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ㄱ사도 300명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이 같은 편의제공 의무를 적용받는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ㄱ사는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내년 신입사원 채용공고부터 이를 적용하고, 관련 업무 담당 직원에게 장애인 관련 교육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간접차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2호에 규정돼 있다. 장애인을 형식상으로 차별하지 않지만 비장애인들만 할 수 있는 기준을 장애인들에게 요구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장애인에게 불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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