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노컷뉴스 조태임 기자] 정부가 4일 발표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로드맵'에 시간제 일자리와 관련된 정책이 주로 담길 것으로 보인다. 로드맵 발표를 며칠 앞두고 열린 ‘노사정 일자리협약’에서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는 등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와 여론은 ‘전 국민의 알바화’로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일자리의 질은 더욱 나빠지게 될 것이라며 정책의 허구성과 부작용을 지적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실에서 실제로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고용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으며 연차?휴가 등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 하루 2시간 50분 근무…근로기준법 적용 피하려는 '꼼수'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놓고 3년 전부터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돌봄 교사 일을 시작한 37살 박 씨는 최근 근무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예전에는 평일 20시간 근무를 하고 주말 4시간 근무로 일주일동안 24시간의 근무를 했지만 최근 평일 14시간으로 근무시간이 급격히 줄었고 주말 근무도 사라졌다.
박 씨는 “근무 시간이 줄면서 돌봄 취지가 무색해졌다. 예전에는 미리 학교에 나와서 간식도 준비하고 했는데 지금은 내가 학교에 나올 때까지 아이들이 방황을 하게 되고 간식도 시간이 덜 걸리는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배식보조를 하는 35살 최 모 씨는 하루 2시간 50분일을 하고 16,320원을 받는다.
5일 동안 일 하는 시간에 14시간 10분에 그치고 한 달 꼬박 일해야 손에 쥐는 건 3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게는 주휴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수당을 안 주려고 학교가 꼼수를 부린 것이다
15시간 미만 근로는 고용보험 대상에서도 배제돼 해고가 돼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는 등 불합리한 점이 많다.
최 씨와 같이 일하는 조리사들도 실상은 비정규직이지만 하루 8시간 일하며 4대 보험 등의 적용을 받는 조리사와 배식보조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최 씨는 “ 조리사 언니들도 우리를 ‘아르바이트’라고 불러요. 조리사 언니들도 비정규직이지만 4대보험도 되고, 연차휴가병가 다 쓸 수 있으니까 우리는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안에서도 더 낮은 비정규직이다”며 “급식실에 구성원이라는 인식보다는 아르바이트 잠깐 하러 온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털어놨다.
노동계는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이런 ‘초단시간 알바’만 낳게 되고 근로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 14%불과…유급 휴가는 꿈도 못 꿔
실제로 최 씨와 박 씨와 같은 초단시간 시간제들은 전체 시간제 근로자 가운데 25%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미비하다.
시간제 근로자들은 각종 사회보험과 수당, 퇴직금 등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영옥 선임연구위원의 ‘단시간 근로의 현황과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기준으로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4.8%에 불과했으며 국민연금도 지역 가입자까지 포함해 20.7%에 불과했다.
시간제 근로자의 12.7% 만이 상여금 혜택을 받고 있었으며 퇴직금, 시간외 수당, 유급 휴가는 이보다 낮은 10%, 6.7%, 6.8%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간제 일자리는 '초단시간 알바',‘질 나쁜 일자리’로 고착화 되는 것이다.
◈ 근로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전환 청구권' 부여해야…자유로운 전환 가능
지난주 발표된 노사정 일자리 협약에는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공언은 있으나 구체적 실현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제 일자리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기보다는 정규직 업무를 시간제 업무로 전환하는 등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게 먼저라고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시간제 근로자를 따로 뽑으면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정착은 어렵게 된다”며 “시간제 적합 직무를 따로 분류하게 되면 그 일자리는 시간제만으로 채워지면서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개발연구원의 최영기 선임연구위원도 “정규직 일자리처럼 보이는데 시간제로 돌리고 그에 따른 연봉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풀타임 근로자와 시간제 근로자를 분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제와 풀타임 근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시간제 일자리가 '만년 을'이 되지 않도록 고용주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근로자가 생애주기와 필요에 따라 근로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전환 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김태현 정책연구원장은 “시간에 비례한 임금차이 외에는 시간제와 전일제 근로자간 차별을 두지 않은 것을 전제로 근로자 본인의 자율의사에 따라 전환을 할 수 있는 청구권을 부여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영옥 선임연구위원도 보고서에서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정착시키기 위해 육아기 단축근로 청구권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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